콩글리시 ‘파이팅’, 한류붐 타고 세계 응원구호된 사연
박찬호 류현진 추신수 등뒤에서 울려 퍼진 '파이팅' 한국이 수출한 한국식 응원구호
'파이팅-.'(fighting)
많은 스포츠팬들이 유년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번 쯤 들어봤던 응원 구호다. 축구-농구-배구-야구-탁구 등 주로 구기 종목 경기장에서 많이 쓰인다.
'화이팅'으로도 표기하는 이 영어 단어는 원래 '싸움' '전투'라는 명사 또는 '호전적인' '전쟁중인'이란 의미의 형용사다. 형용동사나 현재진행형도 아니고 일본에서 전래된 국적 불명의 명칭인 셈이다. 외국어 발음이 나쁜 일본에서는 '화이또'라고 말하는데 동사 원형 명령법 'fight'(싸워라)라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명사형으로 변형되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비빔밥이 되고 말았다.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 'way to go' 'let's go' 또는 그냥 'go'라고 외친다.
자기팀을 응원하는데 '싸움'이라고 외치니 영어 본고장 외국인들은 '무슨 뜻이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국인에게 되묻는 경우도 발생한다. 1980년대까지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 구장(옛 서울운동장)에 가면 흔히 '플레이~플레이~홍길동'이란 구호를 복창했다. 이는 영어로 직역하면 아이들에게 '놀아라'는 뉘앙스다. 역시 일본에서 '후레~후레~XXX'라는 틀린 발음으로 통용되던 잔재다. 논평-언급을 의미하는 코멘트(comment) 역시 언론에서 '멘트'로 멋대로(?) 줄여부른다.
그렇지만 21세기 한류 붐에 힘입어 한국식 영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응원-격려 메시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 외국에 도착하면 현지인들이 'XXX 파이팅'이란 구호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심지어 영어의 본고장인 잉글랜드에서도 손흥민(토트넘 핫스퍼)이 출전할 때, 박항서 감독 신드롬이 일고 있는 베트남에서도, 심지어는 미국 곳곳에서도 박찬호-류현진-추신수 뒤에서 들리는 한국만의 고유언어로 통하게 됐다.
언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국력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원어민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상당히 대중화된 한국식 영어가 응원구호로 당당히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파이팅은 이제 '김치'와 더불어 한국이 수출하는 가장 한국적 '외래 한글'로 머지않아 사전에도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
콩글리시로 출발했을지라도 세월이 흐르며 대중이 받아들이면 엄연한 정식 용어가 될수 있다. 7월 도쿄 올림픽에서도 막강한 한류 파워가 이 같은 한국식 단어는 물론, 궁극적으로 한글까지 더 많이 퍼뜨릴수 있길 기대해 본다.
한편 스포츠 구호와는 달리 개인 고유 이름을 바꿔 부르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미국 골프 스타 미셸 위(31)를 일부 언론에선 아직까지 위성미로 보도하고 있다. 한국계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애국심 마케팅 저널리즘 같다는 생각이다. 본인은 분명히 "성미는 미들 네임이다. 나는 공식적으로(법적으로) 미국인 미셸 위"라고 못박았다. 조니 웨스트와 결혼하며 성도 위-웨스트로 개명한 그는 한국 국적도 오래전에 정리했다.
이는 마치 태국 언론에서 모친이 방콕 출신인 아시아계 타이거 우즈(45)를 자기네 나라 이름인 '톤트(Tont) 우즈'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즈 역시 유년시절 이름인 엘드릭, 톤트 대신 '타이거'라는 애칭으로만 통한다. 이름과 발음은 본인이 불러 달라는 방식으로 따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봉화식은 남가주대(USC)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중앙일보 본사와 LA지사에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의 절반씩을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보냈다. 주로 사회부와 스포츠부에서 근무했으며 2020 미국 대선-총선을 담당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영 김-미셸 박 스틸 연방 하원의원 등 두 한인 여성 정치인의 탄생 현장을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