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가득 채우기(full painting) 작가 김인
지난 11월 20일,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니 유사인간 아톰이 쥔 주먹 작품이 2열로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부착되어 있었다. 순간, 빌딩과 빌딩 사이 도로이면서 광장인 곳에 각각의 작품이 깃대높이 만장(輓章)으로 나부끼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난 그동안 그가 종종 SNS에 올리는 주먹의 군집, 브이(V) 형태의 손가락 군집 등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재”시리즈 작품들을 두고 보았으나 동시대 한국의 사회, 정치적 상황과 연동이 되면서 이해에 접근하였다. 필자는 2016년 겨울 서울의 우울한 회색빛 공간 광화문 광장에서의 거센 바람에 나부끼던 검은 색의 깃발들을 기억한다. 김인의 작품은 연극에서의 암전(暗轉)처럼 분홍색의 선명한 색채로 다가온다.
화가이며 미디어아트 작가인 김인은 ‘작가는 교묘해야 된다. 메시지 없는 작품이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읽히거나 또는 때와 곳에서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30여년전 대학 졸업 작품전에서 각각의 캔버스 작업 작품을 벽에 부착하고서야 각 모티프와 구현한 이미지가 연결된다는걸 알았다. 꿈에서 본 각각의 장면을 일정 기간 자동기술 기법으로 기록한 내용들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듯이.
작가가 오래 사용해왔던 요와 이불, 플라스틱나뭇잎 같은 오브제와 공업용 페인트, 어머니, 부조리한 것들에 대한 욕설 등이 엉켜있는 작업이었다.
이후의 작품들은 한 캔버스 안에 집단적으로 대상이나 이미지를 모아 놓은 게 특징이다. 이를 다시 해체하는 일련의 작업이면서 작품을 팔아 작업해야 되는 작가로서 재고를 확보해야 하는 필요가 맞물렸다. 예전 설치 작업할 때의 느낌을 살려냈다.
현실에서 미술 시장 주도자이며 작가에게는 갑(甲)인 갤러리는 여전히 작품의 주제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기를 원한다.
김인에게 공간은 젊은 시절의 고민이었다. 회화적 이미지 뿐 아니라 빛, 물의 낙차, 소음, 모빌, 영상 등도 활용하는 미디어 아트를 공간에 펼쳐보고 싶었다. 작업을 유지하면서 방법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가 본 것은 분절되고 해체된 이미지가 2차원 평면 회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벽면에 약간의 질서를 가지고 부착되어 있는것만으로도 그의 욕망과 고민, 지향점을 알 수 있었다.
‘지속 가능’이라는 가치는 국가나 기업 경영에서 목표이다. 재능을 가진 예술가에게도 예술혼을 꽃피우기 위해서 지속 가능은 수단이자 전략이 되기도 한다.
김인 작가에게 시간의 흐름이나 작업실의 환경, 전시장의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 김인에게 회화적 작업은 필요한 충분한 작업 공간의 확보, 전시에의 초대 기회와 비용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다. ‘풀 페인팅’(full painting) 이라고 명명한 ‘화면 가득 채우기’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3년여 전 김인의 작품을 작업실에서 대했을 때 ‘권력’과 ‘권력 집단’을 풍자한 것으로 보았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캔버스에 꽉 찬 통일된 조직체가 되어 정연한 질서 의미를 부여하였다. 김인은 대중적 이미지를 매개로 사회를 풍자하고 비트는 팝아트의 정신을 잇고 있다. 대상이자 소재는 애니메이션, 종교적 아이콘, 자동차 등을 등장시킨다.
이날 작업실에 놓인 좁은 캔버스 공간에서 새 떼는 여전히 빽빽히 채워져 가고 있었다. 작가는 과천 서울대공원 조류 사육장 벽화 작업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담벼락에 밀림을 그렸다. 어차피 새들은 가짜 밀림조차 보지 못한다. 관객을 위한 것이었다. 20여 일 동안 작업하는 중 새가 날기도 하고 숲에 빛이 들기도 하며 바람도 불었다. 새들은 어차피 포획돼 갇혀 동작이 활발하지도 않았다. 조류 중에서도 가장 작은 종류인 벌새는 날개를 수없이 움직이며 잠시 체공하는 정지된 상태에서 꿀을 채취한다. 먹고살기 위한 본능에만 충실한다.
처음에는 캔버스 공간을 채우는 게 목표였다. 한 마리 두 마리 숫자가 늘어나면서 캔버스에 채집된 새가 생동감을 가진 생명체라는 인식에 전율하기도 했다.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도시의 밤거리 포장마차에 흔하게 놓였던 참새는, 야생에서 그물로 포획된다. 그들의 군집 생활 패턴을 이용한 사냥이었다.
김인의 새들은 밀집된 공간에서 본능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가까운 날개 짓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덮칠 그물에 갇히기 직전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 그물은 인다라망(因陀羅網)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인드라얄라(indrjala)이며 인드라의 그물이라는 뜻이다. 그물은 인드라 신이 사는 선견성(善見城) 위의 하늘을 덮고 있다.
김인이 새롭게 시작한 ‘다이아몬드’(시리즈 예상)는 정확한 관계의 대칭과 물체가 빛을 받아들이고 투과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중국산 유리 다이아몬드를 모델로 했다. 가질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의 드러남이다. 인다라망은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어 온 세상으로 퍼지는 법의 세계를 뜻한다. 제석(帝釋)의 궁전에 걸려 있는 보배 그물의 마디마디에 있는 구슬이 끝없이 서로 반사하고, 그 반사가 서로를 끝없이 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