⑯ 이재용 반열에 오른 이재용 체제 '뉴삼성' 2인자 정현호

2021-12-21     심정택 칼럼니스트

삼성전자는 지난 7일 총 9명 규모의 2022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기존에 △모바일(IM) △가전(CE) △반도체(DS) 3개로 나뉘어 있던 3대 부문체제를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과 가전과 모바일 등 완제품을 담당하는 '세트'(SET)부문 2개로 통합했다.

모바일 사회로의 본격 진입과 코로나로 인한 서버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는 세계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에게는 역대급 호황을 가져다 주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장의 3배나 큰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오랜 기간 연구개발(R&D)을 바탕으로 아성을 쌓아온 미국의 인텔, 대만의 TSMC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재용은 문재인 대통령을 임기중 수 차례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케 하여, 시스템 반도체 부문 지원 공언을 이끌어 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10월 10일 오전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두번째)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장 근로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번 가전과 모바일 사업을 세트부문으로 합친 것은, 2012년 완제품 사업을 총괄했던 DMC(Digital Media & Communications)부문 폐지 9년 만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무선사업의 단일 매출이 100조원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이 열려 IM담당을 IM부문으로 격상시켰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IM부문은 TV 개발 전문가인 한종희 부회장이 이끄는 모양새이나 스마트폰 사업은 무선사업부 개발실장 출신인 노태문 무선사업부장(사장)이 사실상 총괄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다시 IM과 CE부문을 통합한 것은 기술 발전에 따른 가전과 모바일 간의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다양한 사물인터넷(IoT) 기기들을 스마트폰을 통해 제어하는 스마트싱스 플랫폼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엄격히 말해, 이재용이 이번 사장단 인사권자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재용은 현재 가석방 중이어서 취업이 제한되어 있다. 채이배 전 의원(현 민주당 선대위 공정성장위원장)은 정부의 지난 8월 이재용 가석방 발표 직후 SNS에 “문재인 정부는 공정과 법치를 포기했다”며 “문 정부가 시작한 이재용의 특혜는 이제 시작이다. 민주당의 논평(‘법무부 결정 존중’)도 가관”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정현호 부회장, 이재용 대리인으로 부상 

이번 인사에서 이재용의 최측근인 정현호 사업지원TF장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건희 체제와 비교하면 이학수 전 부회장의 지위이다. 2005년 정보기관 안기부 미림팀의 민간인 불법도청 사건 당시 드러나게 된 '삼성X파일' 내용으로 보면, 이 전 부회장은 그 당시 중앙일간지 언론사 사주에게 불법정치자금 배달을 시킬 정도로 삼성내 위세가 막강했다. 이건희 회장의 사실상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삼성이 더 크게 성장한 만큼 정현호의 권한은 이학수를 뛰어 넘는다. 정 부회장은 삼성 비서실, 기업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 삼성의 역대 컨트롤타워를 모두 거친 삼성의 재무·전략기획 전문가로 꼽힌다.

이재용은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 당시 경영승계와 뇌물공여를 주도한 미래전략실을 쇄신 명목으로 해체했다. 이후 미래전략실을 대신하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장을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것은 이재용의 2선 퇴진을 위한 준비 단계로 해석할 수도 있을 만큼 큰 의미를 지닌다.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당시 사업지원TF 사장)이 지난 2019년 6월 12일 서울중앙지검의 삼성바이오 회계조작 사건 관련 조사를 받고 귀가하고 있다. (사진=뉴스1)

삼성은 이건희 체제에서부터 ‘위탁 경영’이라는 전통이 있다. 이건희는 장기간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 부회장에게 경영을 맡겼다. 위탁경영의 원류는 1938년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삼성상회 창립기까지 올라간다.

삼성은 오너가 미래의 큰 그림과 사운을 건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분만을 챙기고, 계열사의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일임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각 CEO들에게 책임 경영을 하도록 해 성장을 이끈 것도 경쟁력의 한 축이다.

이건희는 현명관의 뒤를 이어 비서실장 자리에 오른 이학수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았다. 위임과 책임 경영이라는 단어로는 정확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위탁이라는 용어가 더 잘 어울린다.

이학수와 윤종용에게 모든 권한을 양도한 위탁경영은 1996년 말에 시작해서 무려 11년이 지난 2008년에 윤종용이 현업에서 퇴임하면서 끝을 맺는다. 1993년 신경영을 추진하기 시작할 때 이학수는 대외적으로는 비서실 2인자인 차장이었으나 실제로는 그룹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다. 이건희와 이학수의 관계는 약 20년의 위탁, 위임 관계로 보는 게 정확하다.

삼성SDI 최윤호의 선택은?

정현호의 덕수상고 직계 후배인 최윤호 삼성전자 CFO(사장)가 삼성SDI로 전보, 대표로 선임된 점이 주목된다. 최윤호는 재무회계 전문가이다. 1990년대초 삼성 4개 회사가 합병돼 탄생한 후 합병회사 표준회계시스템을 만든 실무자로 알려진다. 미국의 반덤핑 통상 압력을 회계시스템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최윤호는 또한 실시간 마케팅 총비용을 집계하고 기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전임 삼성전자 CFO인 이상훈이 8년이나 재직한 것과 비교하면 CFO를 맡은지 불과 2년 만에 계열사 사장으로 옮긴 배경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삼성SDI는 디스플레이 패널 부문에서 글로벌 5위권에 머물고 있다. 중국 기업 BOE가 1위, LG디스플레이가 2위이다. 삼성SDI는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부문에서 LG디스플레이에 상당히 뒤쳐져 있다.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및 이후 전 세계에 중계된 혼란스런 수습은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셋트 기업의 지위를 화웨이 등 중국 기업에게 내주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재용의 결단이라고 치켜세웠던 ‘갤럭시노트 7 완제품 교환 조치’는 삼성전자에 배터리를 공급하던 삼성SDI를 속죄양으로 만들어 삼성SDI의 글로벌 경쟁력 지위를 급격하게 약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7년 삼성SDI의 경영 위기는 이학수를 필두로 한 당시 전략기획실 재무팀이 초래했다. 대부분 삼성전자 소속인 전략기획실 재무라인들은 구조본 시절 전자사업군 사업 조정 과정에서 삼성 SDI가 영위하던 LCD 사업을 삼성전자에 이관토록 했다. 삼성전자를 밀어주기 위해 삼성 SDI가 희생당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삼성SDI는 삼성전관 시절 일본 NEC와 기술 제휴, PC를 제조 판매했으나 삼성전자가 IBM과 제휴해 PC사업을 하면서, 해당 사업을 포기한 적도 있다.

최윤호 사장이 이재용의 e삼성 실패를 수습하는 역할을 했던 과거 삼성 재무 라인들의 전철을 답습할지, 아니면 대규모 투자로 전환시키는 키맨의 역할을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재용이 실패한 대표적인 인사는 갤럭시S6의 런칭을 앞둔 2014년 11월~2015년 2월, 이돈주 전략마케팅실장(사장), 그리고 후임자인 김석필 부사장을 연이어 사퇴시킨 일이다.

이재용과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 체제는 브랜드까지 혁신할 것을 요구하는 전면 쇄신파를 사퇴시키고, 신종균 사장 중심의 기능주의 기술파를 선택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의 글로벌 런칭을 하면서 2014년 여름부터 제조부문의 공정 혁신을 해왔다. 

당시 스마트폰의 급격한 실적 하락으로 인해 신종균 사장이 2선으로 후퇴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2014년 12월 그룹 인사에서 유임됐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 유고후 안착되지 않은 경영권 승계권자로서 이재용은 자신의 운명을 신종균에게 걸었다.

이후 스마트폰 사업은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와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사업 정체와 삼성SDI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라는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한 이번 인사가 2014년 삼성전자 인사의 재판(再版)이 될 지  여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