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대기업 등, '정정보도 청구된 기사' 딱지 악용 가능성
행정기관 성격의 언론중재위가 기사 '열람 차단' 결정?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9일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에서 단독 처리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해 배상액을 높여 언론의 책임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이런 명분 뒤에 숨어있는 독소조항들은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 보도활동을 봉쇄하는 수단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성남시장 시절부터 언론의 비판과 의혹제기에 대해 잦은 법적 대응으로, 법을 ‘입막음 도구' 삼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의 과거 사례에 비춰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어떻게 작동될지 적용해봤다.

<사례>

지난 2012년 5월 18일 서울신문은 1면에 <경기동부연합 사회적기업에 이재명 성남시장 특혜 줬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2010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당시 성남시장 후보로 나온 이 지사가 통진당 김미희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이뤄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 통진당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 인사가 설립한 업체에 청소용역을 위탁하는 특혜를 줬다는 취지의 의혹제기 보도였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보도 5일 후인 2012년 5월 23일 서울신문 보도가 허위라고 주장하며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성남시 4억원, 이재명 개인 1억원 등 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1, 2심 법원은 "정정보도를 해야 할 정도로 허위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오히려 기사의 전체적인 맥락에 비추어 주된 부분에 있어서는 진실이라고 판단된다"며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청구 전부 기각했다.

이 지사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15년 2월 12일 이 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 지사는 민사소송 1심에서 패소한 뒤 서울신문을 상대로 형사고소까지 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위 사례에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적용하면 서울신문의 보도는 재판까지 가기도 전에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①'정정보도 청구된 기사' 딱지붙여 신뢰도 떨어뜨리기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17조의4 제1항은 “인터넷신문사업자에게 정정보도·반론보도·추후보도 청구가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하고, 해당 기사를 매개한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에게 청구내용을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체 맥락에서 진실’로 판명된 서울신문 보도는 이 규정에 따르면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 측의 정정보도 청구만으로도 ‘정정보도 청구된 기사’라는 딱지를 붙여야 한다. 당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은 이 지사 측이 소송을 내고 2년 9개월 만에 났는데, 서울신문의 기사는 진실을 보도하고도 확정 판결을 기다리는 몇 년을 ‘정정보도 청구된 기사’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어야 한다. 당연히 ‘정정 보도가 청구됐다’는 딱지로 인해 기사의 신뢰성은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정정보도청구가 기각됐다는 확정 판결이 났을 때는 그 기사의 내용은 이미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보도의 가치도 상실된 상황이 되고 만다. 

따라서 언론의 합리적 의혹제기와 정당한 비판에 대응하는 권력자나 대기업이 악용하기 딱 좋은 조항이다. 일단 ‘정정보도 청구된 기사’라는 딱지만 붙여놓으면 법원에서 보도의 진실성 판단은 몇 년이 지나서야 나오기 때문이다.

②진위 가리기 전 기사 열람 차단…사실상 삭제 효과

2년 9개월 뒤 법원에서 진실을 보도한 것으로 확정된 서울신문 기사는 진위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인터넷상에서 열람이 차단될 수 있다. ‘열람 차단’은 인터넷 상에서 기사를 볼 수 없도록 하는 조치여서 사실상 '삭제'와 같은 효과를 갖는다. 이는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낳고 있는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치'와 유사하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보도 등의 제목 또는 전체적인 맥락상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언론보도등의 내용이 개인의 신체, 신념, 성적 영역 등과 같은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그 밖에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에 대한 판단 주체도 나와 있지 않다. 서울신문 사례에서 보면 2년 9개월 뒤에야 대법원에서 '진실 보도'로 판결이 확정되는데, 법원의 판결 전에 누가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인지에 대한 규정 등 청구요건 자체가 불명확하다.  

③기사 열람 차단, 문체부 장관이 인사권 갖는 언론중재위가 결정?

기사 삭제와 같은 효력이 있는 기사의 ‘열람차단’ 여부 판단을 언론중재위 결정에 맡기는 것 역시 문제다.

언론중재위는 기구 성격상 언론보도의 진위를 가리기 보다는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하다보니, 언론중재위 심리는 중재 청구 측의 입장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다수다. 언론중재위 입장에서는 진위 판단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절충안을 마련하는 게 실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신설된 기사 열람 차단 청구 조항을 서울신문 보도 사례에 적용해보면 이재명 성남시장과 성남시는 법적 소송에 앞서 언론중재위에 기사열람 차단 청구부터 했을 것이다. 언론중재위는 갈등 중재 차원에서 이 지사 측의 요구와 주장의 수용을 서울신문 측에 압박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갈등이 중재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심지어 언론중재위가 '분쟁'을 이유로 기사열람 차단을 직권 결정할 수도 있다. 

기사 열람이 차단된 상태에서 정정보도 청구 또는 기사 삭제 청구 소송이 진행돼 2년 9개월 뒤 서울신문측이 진실을 보도한 것으로 판명나 기사 열람 차단이 풀린다해도 기사의 의미나 보도의 가치는 없어진 상태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기사 열람 차단 청구 조항 역시 권력자나 대기업 등이 손쉽게 악용할 수 있는 규정이다.

언론중재위원을 문체부 장관이 위촉한다는 점도 언론중재위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다. 언론중재위는 스스로 '준사법적 분쟁해결기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행정기관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015년 11월 19일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인권센터 토론회에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정·인사 등의 환경을 고려하면, 언론중재위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에 가깝다"고 밝혔다.

④이재명 대신 성남시가 고발 주체될 듯…'입막음 소송' 얼마든지 우회 가능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2 제3항에 "공직자윤리법 제10조 제1항 제1호부터 제12호까지에 해당하는 사람 및 그 후보자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기업 및 그 주요주주, 임원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점을 들어 권력자에 의한 '언론 입막음 소송'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울신문 사례에서 보듯 서울신문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주체는 이 지사와 함께 성남시였다. 오히려 청구 금액은 이 지사(1억원)보다 성남시(4억원)가 더 컸다. 당시 2심 법원도 성남시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되는지에 대해 "자연인 이외의 법인 기타 단체 등도 명예의 주체가 될 수 있으므로 원고 성남시도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권력자나 대기업이 기관 단체 등을 이용해 얼마든지 우회 입막음 소송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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