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환원은 13년여 전 비자금 사건 때 여론무마용 약속의 너무 늦은 이행

'이건희 컬렉션'은 블랙홀… 미술품 수만 점의 묻혀버린 구입자금 출처

[ 이건희 평전 매주 1~2회씩 연재 ]

‘삼성공화국’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표현한 비유다. 광고주 삼성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밖에 없는 언론계에서도 한때 삼성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자조섞어 자주 쓰곤 했는데, 요즘은 잘 들리지 않는 듯 하다. 우리 사회에 대한 삼성의 영향력이 이전 보다 떨어져서가 아니라, 굳이 그런 용어를 쓸 필요 없을 정도로 기정사실처럼 굳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게 벌써 15년 전이다. 여기서 시장은 삼성으로 받아들여졌다.  

2016~2017년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과정에서 드러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이 정계 관계 재계 언론계 인사들과 주고받은 문자 소위 ‘장충기 문자’의 내용은 우리 사회에 대한 삼성의 지배력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었다. 

지난 2015년 6월 1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5회 호암상 수상자 축하 만찬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홍라희 여사. (사진=뉴스1)
지난 2015년 6월 1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5회 호암상 수상자 축하 만찬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홍라희 여사. (사진=뉴스1)

삼성 이건희 회장의 타계 후, 언론은 ‘경제사상가’ ‘혁신가’ ‘재계의 큰별’ ‘선구자’ 등으로 추어올렸고 이건희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삼성 일가는 이건희 회장 상속재산 26조원의 납부시한(2021년 4월 30일)을 앞두고 1조원의 사회 환원과 국내외 작가 미술품 2만3000점의 기증 방침을 발표했다. 그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특별관 설치 검토’를 지시하자 전국 지자체들은 우후죽순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이건희 컬렉션’이 블랙홀처럼 ‘삼성 그리고 이건희의 빛과 그림자’를 빨아들였고, 심지어 ‘이재용 사면’의 당위 여론까지 만들어냈다. 자연스런 흐름이라기보다는 삼성의 기획된 플랜 속에서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라는 프레임이 작동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삼성공화국에서 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0월 10일 오전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서 열린 삼성디스플레이 신규 투자 및 상생협력 협약식에 도착, 이재용 부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0월 10일 오전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서 열린 삼성디스플레이 신규 투자 및 상생협력 협약식에 도착, 이재용 부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 삼성일가가 밝힌 1조원 환원은 이미 2008년 삼성비자금 사건 당시 사회적 비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이 회장이 삼성 회장직을 물러나면서 차명재산의 실명화와 함께 약속한 일이었다. 과거 허물과 비난 여론을 덮기 위해 제시한 약속의 너무도 지체된 이행을 마치 유산의 기증처럼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삼성비자금 사건으로부터 13년여가 지난 지금 당시 환원키로 한 1조원을 '감염병 예방 및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 돕기'라는 사용 목적을 내세워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일인 듯 포장한 것이다.

미술품 2만3000여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는 깜짝 놀랄만한 작품들을 무슨 돈으로 어떻게 수집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덮었다. 2008년 삼성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그 때 이미 “삼성의 수장고에 수만 점의 그림이 있다”고 폭로했지만, 당시 삼성 비자금 특검의 철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삼성의 기증 미술품 중에는 그 당시 문제가 됐던 유명 작품들은 빠졌다.

지난 2007년 11월 26일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하는 4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YTN 캡처)
지난 2007년 11월 26일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하는 4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YTN 캡처)

故 이건희 회장에겐 분명 미래를 내다본 통찰력과 지혜로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키운 공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림자까지 덮을 순 없다. 이건희와 이건희·이재용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비판적 입장에서 평하는 ‘이건희 평전(critical biography)’으로 연재한다. 

심정택 칼럼니스트는 2016년 2월 <이건희傳>(새로운 현재)을 출간한 바 있다. 책 출간 뒤 삼성의 전 2인자 이학수는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나, 심정택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전부 승소했다. 심정택은 소송 대응 과정에서 거대한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삼성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됐다. 이번 연재에서는 책 출간이후 국정농단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해 아직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과 ‘이건희 신드롬’까지 책 출간이후 5년 동안의 변화된 상황이 추가 보완됐다. 2016년 <이건희 전>의 개정증보판인 셈이기도 하다. 

심정택의 이건희 평전은 내일(24일)부터 1주일에 1~2회씩 연재됩니다. / 편집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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